__님 안녕하세요,
 창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산뜻한 아침에 편지를 씁니다.

얼마 전, 대학생 때부터 기르던 작은 홍콩야자의 분갈이를 오랜만에 해주었어요.
손톱보다도 작은 새잎을 천천히 틔우던 것이 어느덧 원래의 화분을 비좁아하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묵묵히 자라온 것이 기특하더군요.
화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시간을 가만히 쓰다듬는 일인 것 같아요. 초록은 매번 말이 없지만 매일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처음에는 시들어있는 잎을 볼 때마다 자책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저 하나의 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번 정성스럽게 잎을 틔워내죠.
그곳에서 어떤 묵묵한 용기와 인내를 배워요.

나도 우리도 그렇게 고요하지만,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져서 위로가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성장'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요.
예전에는 꼭 무언가를 이뤄내고,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겼어요.
하지만 요즘은 같은 일에 화를 덜 내는 것, 사소한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처럼 조용하고 내밀한 변화도 성장으로 느껴져요.

__님은 요즘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혹시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지친 마음을 느끼고 있다면 어쩌면 지금은 그저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시기일지도 몰라요.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자라고 있을 거예요.

다가온 유월에도 작은 초록의 기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사호의 김태하 드림.

(P.S. 소중한 날 쓰실 수 있는 작은 엽서를 선물로 함께 넣어드립니다.)